뉴욕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랜덤하게 시작되어 랜덤하게 끝나겠지만 그래도 부분부분 주제중심으로 회상될 것 같다.

———————————————————-

맨하탄 다운타운의 다문화적인 동네, LES

약 7년 반을 뉴욕 맨하탄의 이스트빌리지의 5번가에서 지낸 후, 난 눈내리는 1월의 어느 날 LES 즉 Lower East Side (아래동쪽이란 뜻의 동네이다, 뉴욕에서 아래란 남쪽을 뜻한다.)로 어느 친철하고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알렉스라는 이름의 러시아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비교적 힘들지 않게 원베드룸으로 이사를 했다.  뉴욕 맨하탄의 다운타운의 동쪽에 위치한 이스트빌리지(East Village)와 차이나타운을 잇는 이 동네는 뉴욕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길도 Orchard street나 Ludlow street와 같이 옛 이름 그대로이며 다른 동네처럼 그리드식이 아닌지라, 여행초보자들은 길을 잃기 아주 쉽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개발이 덜 진행 된 동네였기에 이 활기찬 에너지의 동네가 난 참 좋았다.  사실 지금도 뉴욕을 들릴 때마다 꼭 그동네의 음식점이나 바에 들리곤 한다.

LES는 서울에 비교하자면 홍대앞과 살짝 비슷할 수도 있다.  물론 더 오랜 역사가 거리자체에서 묻어나오고, 4,5층짜리의 낡지만 개조된 브라운스톤 빌딩들로 이루어져 있는 풍경을 제외하고는.  그곳에는 많은 이름없는 인디뮤지션들이 유럽과 미국전역에서 올라와 가난하게 라이브바에서 연주를 하며 스타가 되는 그날을 꿈꾸고 있느며, 분위기 좋은 여러  바들이 줄지어 있어 바하핑(Bar Hopping)하기에 안성마춤이다. Bar Hopping이란 하루 저녁에 여러 바를 두른다는 뜻으로 2차, 3차와 비슷하지만, 별로 술은 마시지 않고 여러 종류의 바를 개척하는 것을 말한다.  그곳에는 꽤 유명한 세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많다.  길은 좁고 곳곳에 작은 부티크들이 많다.  빈부가 함께 살고 있는 거리이며, 멋에 죽고 사는 젊은이들이 좁은 아파트에서 비싼 월세값을 치루고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어쩌다 주말에 약 새벽 5시 즈음 나가보면 하우스톤  스트리트 (Houston Street)선상에 있는 레이즈피자(Ray’s Pizza)집에 밤새 놀다가 지친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피자 한조각씩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길에는 노오란 뉴욕택시들이 그들을 집에 태우기 위해 줄지어 있다.

(left:  Ludlow street, looking over Orchard street through construction site, right: Clinton Street – chef district, Clinton & Bakery Co. is a very famous American restaurant)

LES는 진실로 다문화적인 동네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메트로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옆에서 함께 기다리는 일행들은 과연 한 눈에도 다문화적이다.  가장 먼저, 까만 모자를 쓰고 좀 헐렁한듯한 까만 양복차림의 Hasidic 이라고 불리는 유대교신자 남자와 가발과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여자를 보게된다.  그들은 아마도 부부일 것이다.  (하시딕유대인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사람들 같다.  옷차림과 머리스타일도 이상하지만 그외에 다른 여러 종교적 제약으로 폐쇠적인 커뮤티티로 알려져 있다.) 그 옆에는 라틴계의 청소녀인듯한 어린 소녀와 그녀의 엄마인듯 보이는 40대초반의 여인이 손자인 듯 보이는 소녀의 아기를 안고 있다.   그 옆에는 차이나 타운의 중국인, 필시 유학중인 유럽계 젊은 학생들, 아마도 채식주의자일 것 같이 보이는 젊은 미국인, 휠체어를 탄 흑인계의 뉴욕커, 그리고 한국계의 미국인 나를 포함한다면, 정말 다민족, 인종, 문화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어우러져 전혀 어색함 없이 시내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러한 광경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뉴욕만의 특색인 것이다.

나의 사무실은 14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유니온스퀘어공원(Union Square Park)이 내려다 보이는 빌딩의 1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와 내 파트너인 미셀은 정말 운좋게 그런 빌딩에 사무실을 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오전에 LES에서 버스를 타거나 유유히 15분에서 20분정도를 걸어서 출퇴근을 하곤 했다.  빌딩입구는 브로드웨이 선상에 있고 일층에 Max Brenner란 꽤 멋진 초콜릿 카페가 있다.  이사하고 약 3, 4년 후에 생겨서 아직은 좀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미국식 드립 커피와 오븐에 따스하게 데운 초콜릿 크로상의 맛은 정말 예술이다.  언젠가 유니온 SQ공원 근처를 들린다면 꼭 맛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예쁘고 신선하며 맛있는 초콜릿도 팔고 있으니, 유혹을 뿌리치긴 좀 힘들것이다.

나의 회사는 2000년도 8월에 NYU의 동문인 미셀(아프리칸계 미국인)과 콜럼비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석사수료한 두 (베트남계 미국인)와 이미 Webby상을 수상한, CTO롤의 마크(메인주에서 자란 토박이 미국인) 이렇게 3명의 파트너들과 함께 뉴욕의 주립공원인 Bear Park의 잔디밭에 앉아 호수를 보며  5년 사업계획서를 세우며 시작되었다.  회사명은 미씽 픽셀 (Missing Pixel), 빠진 픽셀?  나간 픽셀?  어쨋든 아주 중요한 픽셀을 뜻하는 의미의 회사명으로 모두 합의를 보았다.  물론 회사명은 내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난, ‘조네 집'( Joe’s Pub)이란 말도 안되는 이름의 회사명도 꽤 맘에 들었는데 말이다.   인터렉티브 에이전시이름으로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회사 파트너들도 참 다문화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는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또 나를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만들어 준 큰 계기가 되었다.  9년 간 참 많고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날 성장하게 한 이 소중한 회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른 계기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LES의 사진 몇장을 덧붙여 이만 줄이려 한다.

(left:  Freeman’s Bar, right: Rockwood Music Hall, a decent live music bar on Allen Street)

view from the office window, Union Square, N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