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커


뉴욕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랜덤하게 시작되어 랜덤하게 끝나겠지만 그래도 부분부분 주제중심으로 회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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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다운타운의 다문화적인 동네, LES

약 7년 반을 뉴욕 맨하탄의 이스트빌리지의 5번가에서 지낸 후, 난 눈내리는 1월의 어느 날 LES 즉 Lower East Side (아래동쪽이란 뜻의 동네이다, 뉴욕에서 아래란 남쪽을 뜻한다.)로 어느 친철하고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알렉스라는 이름의 러시아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비교적 힘들지 않게 원베드룸으로 이사를 했다.  뉴욕 맨하탄의 다운타운의 동쪽에 위치한 이스트빌리지(East Village)와 차이나타운을 잇는 이 동네는 뉴욕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길도 Orchard street나 Ludlow street와 같이 옛 이름 그대로이며 다른 동네처럼 그리드식이 아닌지라, 여행초보자들은 길을 잃기 아주 쉽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개발이 덜 진행 된 동네였기에 이 활기찬 에너지의 동네가 난 참 좋았다.  사실 지금도 뉴욕을 들릴 때마다 꼭 그동네의 음식점이나 바에 들리곤 한다.

LES는 서울에 비교하자면 홍대앞과 살짝 비슷할 수도 있다.  물론 더 오랜 역사가 거리자체에서 묻어나오고, 4,5층짜리의 낡지만 개조된 브라운스톤 빌딩들로 이루어져 있는 풍경을 제외하고는.  그곳에는 많은 이름없는 인디뮤지션들이 유럽과 미국전역에서 올라와 가난하게 라이브바에서 연주를 하며 스타가 되는 그날을 꿈꾸고 있느며, 분위기 좋은 여러  바들이 줄지어 있어 바하핑(Bar Hopping)하기에 안성마춤이다. Bar Hopping이란 하루 저녁에 여러 바를 두른다는 뜻으로 2차, 3차와 비슷하지만, 별로 술은 마시지 않고 여러 종류의 바를 개척하는 것을 말한다.  그곳에는 꽤 유명한 세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많다.  길은 좁고 곳곳에 작은 부티크들이 많다.  빈부가 함께 살고 있는 거리이며, 멋에 죽고 사는 젊은이들이 좁은 아파트에서 비싼 월세값을 치루고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어쩌다 주말에 약 새벽 5시 즈음 나가보면 하우스톤  스트리트 (Houston Street)선상에 있는 레이즈피자(Ray’s Pizza)집에 밤새 놀다가 지친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피자 한조각씩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길에는 노오란 뉴욕택시들이 그들을 집에 태우기 위해 줄지어 있다.

(left:  Ludlow street, looking over Orchard street through construction site, right: Clinton Street – chef district, Clinton & Bakery Co. is a very famous American restaurant)

LES는 진실로 다문화적인 동네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메트로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옆에서 함께 기다리는 일행들은 과연 한 눈에도 다문화적이다.  가장 먼저, 까만 모자를 쓰고 좀 헐렁한듯한 까만 양복차림의 Hasidic 이라고 불리는 유대교신자 남자와 가발과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여자를 보게된다.  그들은 아마도 부부일 것이다.  (하시딕유대인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사람들 같다.  옷차림과 머리스타일도 이상하지만 그외에 다른 여러 종교적 제약으로 폐쇠적인 커뮤티티로 알려져 있다.) 그 옆에는 라틴계의 청소녀인듯한 어린 소녀와 그녀의 엄마인듯 보이는 40대초반의 여인이 손자인 듯 보이는 소녀의 아기를 안고 있다.   그 옆에는 차이나 타운의 중국인, 필시 유학중인 유럽계 젊은 학생들, 아마도 채식주의자일 것 같이 보이는 젊은 미국인, 휠체어를 탄 흑인계의 뉴욕커, 그리고 한국계의 미국인 나를 포함한다면, 정말 다민족, 인종, 문화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어우러져 전혀 어색함 없이 시내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러한 광경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뉴욕만의 특색인 것이다.

나의 사무실은 14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유니온스퀘어공원(Union Square Park)이 내려다 보이는 빌딩의 1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와 내 파트너인 미셀은 정말 운좋게 그런 빌딩에 사무실을 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오전에 LES에서 버스를 타거나 유유히 15분에서 20분정도를 걸어서 출퇴근을 하곤 했다.  빌딩입구는 브로드웨이 선상에 있고 일층에 Max Brenner란 꽤 멋진 초콜릿 카페가 있다.  이사하고 약 3, 4년 후에 생겨서 아직은 좀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미국식 드립 커피와 오븐에 따스하게 데운 초콜릿 크로상의 맛은 정말 예술이다.  언젠가 유니온 SQ공원 근처를 들린다면 꼭 맛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예쁘고 신선하며 맛있는 초콜릿도 팔고 있으니, 유혹을 뿌리치긴 좀 힘들것이다.

나의 회사는 2000년도 8월에 NYU의 동문인 미셀(아프리칸계 미국인)과 콜럼비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석사수료한 두 (베트남계 미국인)와 이미 Webby상을 수상한, CTO롤의 마크(메인주에서 자란 토박이 미국인) 이렇게 3명의 파트너들과 함께 뉴욕의 주립공원인 Bear Park의 잔디밭에 앉아 호수를 보며  5년 사업계획서를 세우며 시작되었다.  회사명은 미씽 픽셀 (Missing Pixel), 빠진 픽셀?  나간 픽셀?  어쨋든 아주 중요한 픽셀을 뜻하는 의미의 회사명으로 모두 합의를 보았다.  물론 회사명은 내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난, ‘조네 집'( Joe’s Pub)이란 말도 안되는 이름의 회사명도 꽤 맘에 들었는데 말이다.   인터렉티브 에이전시이름으로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회사 파트너들도 참 다문화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는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또 나를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만들어 준 큰 계기가 되었다.  9년 간 참 많고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날 성장하게 한 이 소중한 회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른 계기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LES의 사진 몇장을 덧붙여 이만 줄이려 한다.

(left:  Freeman’s Bar, right: Rockwood Music Hall, a decent live music bar on Allen Street)

view from the office window, Union Square, NYC

I’m about to head out to Seattle.  Stopping through Portland and LA, I will be arriving to NY eventually as it would be my primary visit this summer.  As a pre-New Yorker, it brings me back all the strange indescribable emotions whenever I visit that city.  I’m staying at unfamiliar neighborhood, still meeting new friends and old friends, adventuring out more.  Still, New York is what it is.  A city with lifestyle whiche you won’t find anywhere else in the world.  I was listening to LCD Soundsystem’s “New York, I Love You. But, you are bringing me down”  – a greate lyric.  You will understand truely if you were once a New Yorker.

New York, I Love You. But, You Are Bringing Me Down
by LCD Soundsystem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Like a rat in a cage
Pulling minimum wage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New York, you’re safer
And you’re wasting my time

Our records all show
You are filthy but fine

But they shuttered your stores
When you opened the doors
To the cops who were bored
Once they’d run out of crime

New York, you’re perfect
Don’t please don’t change a thing

Your mild billionaire mayor’s
Now convinced he’s a king

So the boring collect
I mean all disrespect

In the neighborhood bars
I’d once dreamt I would drink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freaking me out

There’s a ton of the twist
But we’re fresh out of shout

Like a death in the hall
That you hear through your wall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freaking me out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Like a death of the heart
Jesus, where do I start?

But you’re still the one pool
Where I’d happily drown

And oh.. Take me off your mailing list
For kids that think it still exists
Yes, for those who think it still exists

Maybe I’m wrong
And maybe you’re right
Maybe I’m wrong
And myabe you’re right

Maybe you’re right
Maybe I’m wrong
And just maybe you’re right

And Oh..
Maybe mother told you true
And they’re always be something there for you
And you’ll never be alone

But maybe she’s wrong
And maybe I’m right
And just maybe she’s wrong

Maybe she’s wrong
And maybe I’m right
And if so, is there?

옛날에 쓴 글을 발견했다. 지금은 없어진 웹진이지만, 생각이나 올린다. 7년전 쓴글이라 지금과 상황이 다름을 참조하여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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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레이셜 커플

1999.12.9

지금 뉴욕에는 인터레이셜 커플 붐이 일고있다. 아니 현상이라 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흑인과 백인 그리고 백인과 동양인 커플들은 길에서 자주 보이는커플들이다.
세계가 좁아져서 이젠 별로 얘기꺼리가 못되는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들이 재미있다.  예를 들자면 만약에 친구와 길을 걷고 있을때 앞에 동양인 여자아이와 서양인 남자아이가 앞에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고 치자. 대부분의 한국남자는 그 꼴을 굉장히 눈꼴시어한다. 화를 내기일수다.  이렇게 괜찮은 한국남자를 두고 왜 하필이면 서양남자를… ! 정말로 못봐주겠다!  자신감인지 컴플레스인지 질투심인지 모를 그런 태도가 대부분이다.(한국여자인지도 모르면서…) 한국여자들의 반응은 주로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과감한 반응들이고, 서양남자들은 무척 부러워하는 반응이다. 트렌드이기에…그러면서 주위에 아는 한국 싱글 여자를 소개해 달라기 일쑤이다. 그러면 난 농담반 진담반 섞인 말투로 일본여자들이 어때? 문화적으로 훨씬 사귀기쉽고 덜 복잡할텐데.. 라고 하기 일쑤다. 아직은 뉴욕에서도 특히 한국인과 서양인 커플들은 남의 눈초리를 인식해야 하는게 보통이고 물론 부모의 반대에 못이겨 결국 헤어지는 커플도 여럿봤다.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점에 결국은 헤어지는 그런일도 많다.

언젠가 나의 엄마와 이런대화를 한적있다. 나와 내 사촌 여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난 나중에 내자식이 만약에 한국인이 아닌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면 말릴생각은 없어. 물론 문화적인 이해의 어려움등등 힘든점은 설명하겠지만 둘이 좋다면 어때? 우리엄마의 대답은 이틀뒤에나 들어야 했는데, 즉, 너희들은 많이 다른 문화와 섞여서 자라고 또 너의 세대의 사람들이 보는 인식이 다르기에 받아들이기에 쉽겠지만 엄마세대의 사람들은 부모로써 허락할수가 없단다. 즉 세대차이를 내세우시는데, 별로 대항할 말이없었다. 엄마세대가 우리보다 훨씬 힘든게 살아오셨다는것을 알기에. 우리 엄마의 캐이스는 그나마 진보적인 대답이었다. 우리 아빠에 비하면.

최근에 우리 아빠가 선언을 하셨다. 한국에 가셨을때 동창을 만났는데, 잘 키운 딸을 독일인에게 뺐기었다고 우시는 친구를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 그래서 그런일이 나나 내동생에게 생길 경우에는 부모간의 인연을 끝겠다나.이민 경력 15년의(미국에서는 이민 생활이 길수록 매우 보수적 이다.  15년적 사고방식 그대로이기에) 고수의 보수파 아버지라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는데, 어려서 부터 미국에서 자란 내동생으로써는 매우 이해할수없는 고집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리라는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있기에, 나는 이유를 물었다. 별로 뒷받처주는 이론은 아니었으나,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이론이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외국에 사는 이민 교포들이 국제 결혼을 하면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 아니되는것은 아닌데, 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 많은지 의문이다. 다른 민족을 보면, 유태인의 경우에는 다른 외국인들을 유태인으로 받아들여 자기들의 문화를 번창시키는가 하면, 아이랜드인 들은 본토의 단일미족을 유지하면서 미국에서는 뿌리깊게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나도 우리나라의 명절이 미국달력에 유태인들의 명절처럼 인쇄가 되어져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멀었다. 자식을을 잃는게 아니라 얻는것으로 생각을 바쑤면을 가단한것을 왜 자식과 자신을 불행히하는 케이스가 많은지 안타싸울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세계인으로써 인정을 제대로 못 받았다. 문화란 생활속에서 번창해 가는 것인데…

어쨌든 매일 매일 눈에 뛰게 증가하는 인터레이셜 커플들이다. 흑인남자와 금발머리여자, 서양남자와 동양여자, 동양여자와 서양남자 커플애 비해서는 드물게 동양남자와 서양여자들과 흑인여자와 백인남자…등등..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니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는 뉴욕커들이다. 이젠 데이트도 글로벌로…, 뉴욕에는 타국인이 월등히 많기에… 내 주위만도 특히 동양이과 서양인 커플들이 꽤 되는데 결혼한 커플이 대부분이다. 유태인남자와 결혼한 선배언니, 한국여자와 결혼한 가정적인 대학원교수와 미국인 학교동창. 가장 친한친구인 티나는 캐나다인과 최근에 결혼을했고, 본인은 집에 가끔씩 구박을 받는 싱글이다. 나는 선호도가없다. 그저 나의 인연은 어디엔가… 집안의 평화를 위해 한국남자였으면하지만 결혼을 위한 결혼은 싫다.

뉴욕시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싱글과 독신들의 도시이지만 그래도 결혼도 많이 한다. 미국의 결혼식는 한국과 달리 오랜기간의 준비를 거쳐 아주 친한 친구들과 친지들만 초대된다. 물론 옷은 가추어서 드레스나 정장을 입고 참석하는게 예의이다. 식은 반나절에서 하루종일 진행되고, 리셉션 파티가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슬프게도(?) 많고 많은 결혼식을 참석만 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모처럼 근사하게 차려입을수있는 기회이기에 반기는 편이다.

나의 뉴요커 친구들 대부분 사실은 결혼식은 이태리나 아일랜드, 해외에서 했는데 6년전에는 대학원 동창 (캠퍼스 커플) 결혼식에 참석하기위해 다른 뉴요커 친구들과 아일랜드까지 갔었었다. 더블린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정도에 있는 오래됀 성에서 했는데 약 사 오십명의 초대객들과 함께 멋있게 진행되었었다. 물론 참석하는것이 결혼선물이었다.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타지인들이라 결혼식을 뉴욕에서 하게되면 오히려 가족들이 멀리서 날라오고 친구들이 결혼준비를 도와주는 편이다. 그래도 결혼식 비용을 대기에는 조금 벅찬 편. 미국에서는 독립한 성인으로서 결혼준비와 결혼비용은 본인들이 처리한다.  대부분 동거후에 결혼을 하기에 신혼살림 마련걱정은  안하는 편이지만서도.  돈이 없는 커플들은 아파트옥상에서 식을 올리고 동네 바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기도 하고 더 한 커플들은 시청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는것으로 간단히 끝낸다.  한 독일인 친구는 남편이 부모님을 시청으로 초대해서 그날 바로 식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요즈음 세대의 미국 부모님들께서 자식들이 결혼만해도 감지덕지.  그래도 요즘 20대 젊은이들은 우리 X세대와 달리 결혼과 가정을 일찍 일구는 경향이있지만서도….

어떤 태국인 디자이너 커플은 이바이트(evite)로 결혼 초청을….!? 난 그저 저녁파티인줄 알고 제대로 갖추어 입지않고 가서 민망했던게 생각난다.  최근에 참석했던 뉴요커의 결혼식중에는, 커플끼리 벌써 이태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친지들을 위한 리셉션은 한달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하루 그리고 반 동안 거행됐던 친구들. (지금도 잘 산다) 결혼식은 브런치로 한 유태인 커플, (브런치란 주말에 늦잠을 자고 난뒤 먹는 아침겸 점심겸 식사를 일컬은다) 난 브런치와 미모사 (미모사 = 샴페인과 오렌지주스를 섞은 칵테일 – 주로 브런치에 마신다)를 워낙 좋아하기에 즐겁게 마시고 먹었다.

그리고 한달전에 있었던 나와 무척이나 친한 티나의 결혼식. 그녀의 결혼은 두번째 하는 결혼이지만 신랑의 가족이 워낙 수가 많고 가족관계가 돈독하기에 이번에는 좀 무리를 해서 150명의 하객들은 예산으로 식준비를 해야했다. 결혼식 장소와 음식, 칵테일, 드레스등등, 무척이나 검소한 그녀였으나 그래도 약 2 만불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래도 행복한 결혼식 이었다. 그녀가 드레스를 고를 때 같이 갔었는데 (드레스집이 우리집에서 2블럭 가까이에 있었다.) 드레스를 사는데 329불 밖에 안들었다. 티나는 성격이 워낙 털털하기에, 그리 스트레스를 받지않고 무난히 4개월간 준비를 해왔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미국의 결혼식 절차중에 vow 라고 신랑과 신부과 직접 쓴 글로 서로에게 맹세를 하는 절차가 있는데, 티나와 재이슨의 글은 너무나 가슴에 와닿아 본인들은 물론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리게 되었다.

그래, 그래서 결혼식을 하는구나. 친지들에게 나 이사람과 열심히 살아보게습니다 라고 선고하기위해. 결혼식이 근사하다고 기분좋은 결혼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런, 형식에 얶매이지 않은 케주얼한 결혼식이 좋다. 이 커플은 데이트 첫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사년정도간 지겨 보아왔기에 난 잘 살거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나라면 시청에서 간단히 식을 올린 후, 동네 바에서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술을 마시고 싶다, 만약 결혼을 하게된다면.

태국인인 티나는 태국의 결혼행식도 끼어 인상적이었다. 식후에는 주로 코스 음식과 술이 대접되는데 주로 누가 어느 테이블에 누구와 같이 앉을지는 보통 미리 정해져서 이름표가 테이블위에 가추어져있다. 그러기에 결혼식에 참가할 의사가 있으면 미리미리 rsvp를 하는것이예의이다. 우리들의 친구 줄리엣이 직접 블루베리와 레즈베리를 짷아 만든 칵테일을 대접했고 우리들은(약 열두명 정도의 친한 뉴요커 친구들) 밤늦게 까지 신랑 신부 부모님과 가족들과 춤을 추고 놀았다. 그리고 그것도 아쉬워 다운타운 동네로 돌아와 새벽 두시까지 수다를 떨며 더 술을 마셨다, 우리끼리. 이제 우리중 싱글이 몇명이나 남았나? 그래도 꽤 남은것 같은데, 본인을 포함해서… 남들은 두번씩 하는동안…난 뭐했나? 어쨋든 나이가 차고 넘어서 그런지 무지 부러웠다. (돈을 물쓰듯이 써야 하는것만 빼고…)

One thing I’m going to miss a lot if I ever leave NYC is watching a new movie release in a New York City theater. The movie crowds in NYC are awesome! It’s better than baseball games to me. They are expressive and smart. I have endless episodes in movie theaters and this was one of those nights.

I went to see “The Black Dahlia” with a friend of mine on Friday – since it just opened that day, there were annoyingly long lines front of theater 30 min before – even though there are movie playing every half an hour. I was thinking, ‘oh, this’d better be good!.’ But I was surprised to find out that it was bad. However, when a movie is bad, it becomes more interesting experience to our movie watching- especially it’s in New York City.

They’ve tried to revive old black and white detective movie but, they must have missed certain ingredients. It was half way in everything. It wasn’t gruesome (I hoped to be grusome) nor corny in a good way(like “Dick Tracy”) nor romance nor comedy nor suspense. I hope you get the picture by this abstract expression of mine. Apparently, the story started slow but glamourously with beautiful cinema shots and beautiful custom fashion design. Characters were well played but, not well defined for viewers to relate with. 20 minutes into the movie, girls somewhere in front rows started to laugh – it was a serious scene. Then, I started to laugh in next scenes and next thing you know is that laughter has spread out to every seats in the theater( it was a sold out show.) It was just really funny. Not a comedy-like way but, it was comic by just bad lines. I couldn’t help laughing thinking, ‘oh no, that was so out of place.

Then after one and half hour of slow pace, the plot suddenly got accelated… as the main character guy realizing who the killer was, there was a very tacky echoing voice of saying “She looks like that dead girl” – at that moment, the whole theater lost, big laughter came out as a group. We knew we were near end after 2 hours and at the last scene where everyone could expect it it’s an ending (in a Hollywood way), one woman yelled, “Oh, it’s about time!” People laughed more. I couldn’t hold my giggling and laughing either.

As we walked out of theater, we both said, “well, that was bad but, the crowd was fun.” Actually, it’s more fun when the movie is worse in the theaters of New York City. I didn’t mind watching it at all depite of all. I was actually glad that I watched it in the theater with a big smile on my face.

FOOT NOTE

Just To Be Fair: There was one great scene in this movie. In a boxing scene, the character, Bucky’s front teeth flying out by the last power punch to knock him down…! What a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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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뉴욕을 떠나게 된다면 몹시 그리워할것중의 하나가 새로 오픈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다. 뉴욕의 영화관객들은 정말 재미있다. 자신들의 느낌을 화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관객들이기에 나는 그동안 극장에서의 에피소드들은 정말 많다. 그러하기에 못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게 야구게임 만큼이나 재미있을 때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최근에 보러간 “블랙 달리아”를 보면서의 일이다.

영화전부터 줄이 길어 좀 짜증스러웠지만 (미국의 극장들은 자리가 제정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인기있는 영화는 미리 가서 줄을 서야 괜찮은 자석에 앉아볼수있다.) 그래도 관객이 많기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정말 별로 였다. 그렇게 공포스럽거나 징그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코메디도 아니고 로맨스는 더 더욱이도 아니고 서스팬스도 아닌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왠지 만들려다 만 작품같이 느껴졌다. 이야기의 전개는 아주 느리게 시작되었다. 배우들이 연기는 그런데로 했지만 인물설정은 미비한 점이 많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이었다. 영화는 그러하다치고, 영화시작 이후 한 20분 점 즈음이었다, 앞줄에서 여러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심각한 장면이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도 그후 다른장면에서 웃음을 못참아 낄낄대기 시작했다. (물론 역시 심각한 장면이었다.) 다른 관객들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시대적 살인사건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코메디영화를 보는줄 알 정도였다.

물론 우리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왜 우리가 웃는지 알면서 웃는것이었다. 지루한 인물 및 사건 배경설정이 어느정도 끝난 두시간 십분정도뒤 드디어 남자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시 돌아가는 장면후 크레디트 자막이 흘러나올려는 쯤, 앞자리의 어떤여자의 극장에서 들릴만한 큰 짜증스러운 목소리의, “드디어 끝나는 군!”의 뜻인, “It’s about time!” 여기저기서 관객들은 다시 웃기 시작하면서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친구와 함께, “그영화 별로 였지? 그런데 정말 재미있었어! 역시 뉴욕커들이야!” 하며 소담을 나누었다. 더 못만든 영화일수록 관객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어지는 뉴욕의 극장들… 나는 십 일불이 하나도 안 아까왔고 오히려 얼굴에 큰 미소를 남기며 극장을 떠나게 되었다. 정말 솔직하고 스스럼없는 뉴욕의 영화객들이다.


“Post No Bills”
Originally uploaded by youngster.

This photo was taken in Sept, 2002 at the ground zero

Today is Monday, Sept 11th, 2006. Sept 11 became something else to the world since the event occured 5 years ago today. I was living in East Village & just arrived to JFK from Florida a night before 5 years ago. When I walked out to get my morning coffee on 2nd Avenue, I couldn’t believe what I was seeing. Huge smoke coming from twin towers… then, it happened.

I became speechless for days afterward. Actually I never wrote about that day – I was very tramatized to work or even to live for at least 3 months just like most of my friends in NYC. I felt like a zambie going to work everyday during that time. Reading anything related to that incident was just very painfufl for insiders like us New Yorkers who lived and remembered the tower for more than a decade. I think that’s when New Yorkers were opening up to each other more than before because we all shared that sad memories of 911.

After about one year, finally I had a courage to visit the ground zero. My friend and I decided one evening to walk around the area where used to be twin towers which seemed a lot different than it used to be. I have been up to the tower and I had a dinner at the window of world (restaurant on the top) – in another word, I have memories related to that place. You just can’t help but being drown by sorrow feelings whenever you are in the ground zero.

I managed take this one photo with my small digital camera. “Post No Bills” in ground zero area. It seems like a normal scaffolds with “Post No Bills” sign but, it’s to me all about 911. Since then, subconsciously, I’ve been avoiding to go to that area. I normally don’t leave 20 blocks away from my downtown neighborhood in NYC but, I know it was my subconscious mind did it.

My deepest condolences to lives lost 5 years ago here in New York…
“………”(moment of silence)

There is a tribute concert in Union Square Park now… my window is open at my office. 🙂

(영문으로 쓴 Addictiveness of Bikram Yoga in NYC의 한글 버전이라고 할수도 있음)

한 달전부터 비크램 요가를 시작했다. 우리집 근처에 있는 비크램요가 스튜디오가 궁금하기도 했고, 친구가 지난겨울에 좀 하다가 그만둔 후 같이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말에, 때 마침 힙합댄스, 벨리댄스, 축구, 농구, 스노우보드 등등 이것저것 해보다 지루해 그만둔 나에게 새로운 도전처럼 느껴저 얼른 오케이를 했다. 이즈음에서 독자들은 내가 굉장히 운동신경이 좋은줄 착각을 하시겠지만, 천만에.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운동에는 꽝 이었다. 하지만 못한다고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못해도 즐길수있는 낙천적인 성격에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편이다.

첫날은 내친구 티나가 펑크를 내어 혼자 가게되었다. 핫요가라 하기에, 더운 온도에서 땀을 좀(!) 흘리며 하는건가 보다 하고 마~냥 생각했던 나는 스튜디오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공기에 숨이 확 막혔다. 화씨 105도에서 110도 가량의 방에서 90분동안 꼬박 26가지 포즈를 두번씩 해야 한다는것을 첫날 알았다. 숨쉬기로 시작해서 숨쉬기로 끝나는 90분은 고문처럼 길었다. 첫날에는 그저 앉아 있기도 힘겨웠다. 30분뒤, 내 손과 팔에서 쥐가 나기 시작하면서 마비현상이 일기시작해서 부득이 하게 밖에서 5분정도 앉아 쉬어야했다. 요가선생님의 사인에 다시 들어가 숨쉬기 운동만으로 겨우겨우 90분간의 요가수업을 끝냈다. 밖으로 나왔을 땐 운동한 것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세상에…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수는 없었다. 그 후로 하루 걸러 매일 가기 시작했다. 세번째 네번째부터는 이젠 꾀도 안부리고 발도 안 절이고, 땀도 더 많이 나기 시작하면서 몸이 단단해지는것이 느끼어졌다.

아 이래서 모두들 이요가를 하는군… 웬지 모르게 참선효과도 되고, 끝나고 나면 한여름에도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요가포즈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지만, 높은 온도 때문에 심장박동이 쉽게 빨라지고, 혈액순환이 잘되며 근육에 전혀 무리가 안간다. 단지 100도가 넘는 온도에 쉽게 익숙해지기가 힘들뿐이다. 사우나보다 조금 온도가 낮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앉아있어도 땀이 난다. 이제는 흐르는 땀방울에도 익숙해지고 되도력이면 완벽하진 못해도 최선을 다하려 노력중이다. 이젠 배도 좀 들어간것 같고 자세도 똑바르게 되어가는것 같다.

처음 2주간은 다른 요가 스튜디오에도 가보기 시작했다. 비크램요가는 가히 떠오르는 뉴욕의 트랜드라 할수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저있고 또 스튜디오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트랜드에 앞장서는 내가 하게 되었으니 물론 인기가 많아 졌겠지만서도… ㅋㅋ) 그래도 우리동네 LES에 있는 비크램요가 스튜디오가 가장 물도 좋고 스튜디오도 크고 많은 창문들로 벽을 이루어 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물론 주요 고객들은 LES의 젊고 아리따운 싱글 프로페셔날 들이고 남녀의 분배가 잘 반반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보다도 더, 선생님들이 훨씬 낫고, 스튜디오 로고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핑크빛 세겹의 땀방울 모양…멋진 로고 답게 이 요가스튜디오가 가장 온도가 높다고 할수있다. 주로 화씨 110도. 다른곳은 좀 시원하게 느껴질정도다. 하지만 근육이 더 아프다, 다른곳에서 하고나면.

어쨌든 나는 중독이 되었다. 비크램요가에… 그것은 아마도 좋은 현상인 것 같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하는 첫걸음이라 생각이되니까…

월드컵, 축구는 미국에선 인기가 정말로 없다. 프로미식축구와 야구, 테니스, 농구와 하키등등 다른 스포츠가 판을 치기에 축구는 그저 초등학교 아이들이나 하는 스포츠로 인식이 주로 많이 되어있다. 월드컵은 단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스포츠 축제처럼 보인다. 뉴욕은 하나의 나라라고 할정도로 다른 미국속의 미국인데 그래도 외국인들이거나 이민자들외에는 여전히 관심밖이다. 그래도 뉴요커들은 대부분 외국인 이거나 외국에서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주로 많기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성소리가 내 창문 밖 길거리에서 가끔 들린다. 지난 프랑스 대 코리아전 때에는 다운타운 2번가의 스포츠 바에서 여러친구들과 같이 월드컵을 보았다. 프랑스인들도 제법되었고, 한국인들도 제법 되어 양쪽 다 응원을 해가며 보았다.

며칠전 포르투칼 대 영국전을 동네의 프랑스 바, “타박”(Tabac)에서 한 태국친구와 같이 보았는데, 나는 포르투칼을 응원하고(왜? 잘생겼으니깐…), 내옆의 어떤 동양여자의 남편은 영국인인지 계속 얼굴을 깜싸면서 괴로와하며 보고있었다. 생각해 보면 동양인과 유럽인 그리고 남미인들은 모두 월드컵에 열광을 하는데 몇명의 미국인들외에는 대부분의 반응은 주로 나의 월드컵 열광에 의외라는 태도 그리고 내가 무슨소리를 하는지 모를정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 축구는 내가 꼭 보는 단 하나의 스포츠라고도 할수있어’ 하면, ‘축구는 내가 안보는 단 하나의 스포츠야’ 하는 대답을 들은적이 있다. 정말 싸늘한 지지도이라고 할수있다. 아마도 그래서 미국 축구는 생각처럼 잘 못하나보다. 분명 어디엔가 축구천재들이 이 큰나라에 있을텐데 항상 지는 축구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스타가 될수있는 야구나 농구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것이다. 미국축구가 월드컵에서 잘해야 관심도가 올라갈텐데, 아마도 닭이냐 달걀이 먼저 이냐인 상황인것 같다.

그래도 뉴욕시에 살기에 같이 월드컵을 볼수있는 이웃들이 있어 정말 좋다. 늦은 아침에 브런치와 미모사를 마시며 월드컵 게임을 볼수있는 여유를 챙길수있어 좋다. 브런치를 먹은 후에는 다른 자리로 바를 옮기거나 해서 드래프트 맥주를 마시며 오후 게임을 볼수가 있어서 좋다. 지난 몇주간의 주말이 즐거웠고 그리고 이제 월드컵 결승전이 중계되는 돌아오는 주말이 기대된다. 내일응 독립기념일인데, 한 친구가 일하고있는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동네 바에서 같이 보기로 했다. 내일은 불꽃놀이를 보러 빌딩 옥상에 올라가겠군… 많은 루프탑파티가 벌어지겠군… ㅎㅎ

한 사오년전 한국 루루라는 웹진 사이트에 뉴욕스토리를 몇달간 연재를 한적이 있다. 물론 편집자님께서 나의 엉망인 문법과 띄어쓰기를 고쳐주셨겠지만… 어쨋든, 갑자기 그생각이 나서 다시 홀로 뉴욕스토리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그것도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싱글 라이프를 산지도 언 16년이 넘는다. 내나이는 적지않은 삼십대 중후반, 직업은 사업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 테크놀러지 아티스트 등등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하고 있다. 대학교때 이사와서 한국에 잠깐 2년 반 산거 외에는 줄곳 이 도시에서 살아왔다. 7년 반동안의 이스트 빌리지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은 LES (Lower East Side)라는 이스트 빌리지보다 한 5 블럭 남쪽에 위치한 젊은이들에게 떠오르는 동네에서 산지도 벌써 일년 하고도 반이다. 뉴욕커 메거진의 LES에 대한 설명기사 참조 바람.

오년전 루루 기사를 쓸때와는 나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다. 아마도 뉴욕시도 알게 모르게 많이 변했겠지. 무엇보다도, 911이후 도시가 물갈이를 좀 하면서 전체적으로 좀더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진것 같다. 의외인가? 원래 고난이 닥쳐 같이 극복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유대감이라고나 할까? 어쨋든 이제부터 뉴욕에 관한 스토리가 이어지겠다. 뉴욕을 만드는 것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고 바로 개성이 강한 뉴욕커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그들에 관한것이 될것이다.